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프레트 요들 (문단 편집) === 전후 === [[파일:external/www.toptenz.net/alfred-jodl-570x244.jpg]] ▲ 알프레트 요들의 [[머그샷]]. 요들은 항복 직후 [[플렌스부르크 정부]]로 옮겨갔으나 상관인 [[빌헬름 카이텔]]이 전범으로 체포되자 국방군 최고사령부 총장 직을 수행했는데, 플렌스부르크 정부 업무 종결 이후에 [[알베르트 슈페어]]와 [[카를 되니츠]]와 함께 체포되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요들은 어디까지나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라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연합국측이 '옳지 않은 명령을 그대로 행한 그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합국은 요들에 대해 전 기소 사항에 유죄를 주장하면서 종신형이면 충분하고 사형만은 지나치다는 입장이였으나,[* 특히 프랑스 측 판사는 요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데에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코만도 명령[* 체포된 영국과 미국의 특수 부대원 처형 명령. 실제로 전부 이행되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이행되었고, 특수부대 포로를 사살한 [[안톤 도슈틀러|독일군 지휘관]]은 처형되었다.], [[정치장교 명령|코미싸르 명령]][* 소련의 정치장교에 대한 처형 명령]에 요들의 최종 서명이 담긴 것 이외에도, 소련측은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시 [[소련군]] 포로의 대량 학살[* 1941년 6월부터 12월까지 소련군 200만 명이 포로가 되었는데 적어도 6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 중 상당수는 독일군의 즉결처분에 의해 사살되었다.]에 요들이 관여한 혐의를 집요하게 추궁하였다. 요들은 "걷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걷지 않으려고 하는 자를 사살했을 뿐이다." 라고 자신을 변호했으나, 당시 수십만 명의 소련군 포로가 즉결처형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소련 측은 강하게 사형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요들을 옹호하는 일부 밀덕들은 소련이 억지로 요들의 사형을 주장해 관철시켰다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다른 나라도 자국 포로 학대는 마찬가지로 엄한 처벌을 주장한다. 미국만 하더라도 필리핀에서 일본군이 자군 포로를 학대하여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바탄 죽음의 행진]]에 연관된 일본군 지휘관들을 엄단했으며, 직접 학대를 명령한 지휘관뿐만 아니라 직접 명령을 내리지 않은 사령관급([[혼마 마사하루]])까지 책임을 물어 미군 재판정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다만 다른 일부 전범 사형수와는 다르게 후하게 예우를 받았고, 최후의 식사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비프스테이크에 샌드위치, 맥주를 청해 다 먹었으며, 식후 커피까지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본인 요청에 의해 일본군 군복을 입고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다만 직접 명령을 내린 [[츠지 마사노부]]는 전범재판을 피해 동남아에 은거 중이었기 때문에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몇배 규모의 짓을 벌였던 독일군의 수뇌부도 당연히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또한 요들에게 추가로 적용된 혐의에는 불법 추방과 사형 집행이 포함되었다. 유대인을 포함한 덴마크 시민들을 나치 강제 수용소로 이송하라는 명령에 요들이 서명한 것이 증거로 제시되었다. 그가 정권 활동에서 자신의 역할을 부인했지만, 프랑스 판사와 법원이 조사한 증거를 바탕으로 혐의를 유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